2013년 6월 8일 토요일


취업정보 수족냉증 좌골신경통

인재들이 떠난다

 

 



대학 새내기인 이병찬씨(23)는 한때 컴퓨터전문가를 꿈꾸던 공학도였다. 이씨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서울 중앙고에 다니던 3년 동안 반에서 2~3등을 오르내릴 정도로 좋은 성적을 유지했다. 2학년에 올라가면서 문과(인문계열)와 이과(자연계열)를 선택할 때 그는 주저없이 이과로 진학했다.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수학이었기 때문이다.

3학년이던 2008년 2학기에 이씨는 한양대 컴퓨터공학부와 연세대 컴퓨터공학부 수시모집 전형에 지원했다. 입시공부에만 매달리던 이씨에게 컴퓨터공학도는 막연히 ‘취업이 잘되는 삶’으로 여겨졌다. 신문과 방송에서 ‘대한민국은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경쟁은 치열했지만 좋은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직장에 들어가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컸다.

이공계는 장학금이 많다는 점도 컴퓨터공학부를 선택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부모가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고 있는 이씨는 수백만원인 대학 등록금을 공부만 열심히 하면 조금이라도 아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며 이씨의 지원을 말리지 않았다. 착실히 내신성적을 관리한 이씨는 한양대 컴퓨터공학부에 합격했다.

하지만 이씨의 기대는 두 달 만에 무너졌다. 성적만 좋으면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장학금은 ‘그림의 떡’이었다.

▲ 컴퓨터 전문가 꿈꿨지만 대학선 주입식 교육 치중

취직 후 관리직 전락 현실… 1학년 때 전공 흥미 잃어


컴퓨터공학이나 이공계 학생을 위한 산학 연계 장학금은 모두 석사나 박사학위를 준비 중인 대학원생 몫이었다. 이씨 같은 학부생을 위한 장학금 프로그램은 공대생이든 인문계생이든 거의 없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벗어날 것 같던 주입식 교육도 계속됐다.

신입생이 배우는 과목은 기초과정이었지만 매 시간 등장하는 새로운 용어를 외우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부족했다. 이씨는 “컴퓨터를 전공하면서 체험하고 싶던 ‘창의적인 공부’는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씨가 실망했던 것은 선배들로부터 들은 졸업 후 현실이었다. 선배들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면 미래가 캄캄하다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해댔다. 전공을 살려 희망하는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직해도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기간은 길지 않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입사 후 몇 년만 지나면 인사·회계·마케팅 등 관리직이 하는 일을 똑같이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씨는 “1년에도 몇 천명씩 컴퓨터 전공자가 쏟아져 나와 정보기술 업계에서는 전문인력을 소모품처럼 취급하고 컴퓨터 프로그래머도 대부분 게임 분야에서 일할 뿐 시스템통합(SI), 사무용 소프트웨어 등에서 일할 기회는 거의 없다고 들었다”며 “최소한 먹고살 걱정은 하지 않고 싶었는데 미래가 너무 암담했다”고 말했다.

그는 4월부터 전공에 완전히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수업도 빠지기 일쑤였다. 결국 1학기 중간고사에서는 1점대 학점을 받았고 기말고사는 아예 치르지도 않았다. 이대로 가면 안되겠다는 마음에 2학기 등록은 하지도 않은 채 군입대를 준비했다. 그는 “남들 다 참고 하는 공부인데, 내가 부족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며 “군생활을 하면서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한 뒤에 새 출발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군복무를 마친 후 이씨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다시 보기로 결심했다. 22살이라는 나이가 부담스러웠지만 만약 실패하면 또다시 컴퓨터공학과로 돌아가야 한다는 위기감에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했다. 고등학교 시절 좋아한 수학 공부를 다시 할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즐겁기도 했다.

1년 동안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이씨는 2012년에 치른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 그는 한의대를 선택했다. 안정된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과 양의보다는 한의학이 성격상 맞을 것 같다는 주위의 권유에 따라 경희대 한의예과에 지원해 합격했다.

한의대에 입학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이씨는 여전히 쉽지 않은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치르는 시험에 밤새워 공부할 때가 많고 성적도 중간쯤에 머무는 수준이다. 그러나 적어도 미래가 암울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씨는 “공대생 시절, 정보기술 업계에서 보다 선명한 비전을 봤더라면 이렇게 먼 길을 돌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정부나 사회가 말로만 정보기술 강국을 외치지 말고 실질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줘야 나처럼 진로를 바꾸며 어렵게 공부하는 후배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류마티스

디스크
미국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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